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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SON 푸스카스 수상에 난리  
서울구정신문(http://seoulgujung.co.kr)   
기사관리자 | 2020.12.18 15:26 |


- 보고 또 봐도 안 질리는 골

 

손흥민(토트넘)의 수상에 토트넘이 대대적인 환영을 보냈다.

손흥민이 18(한국시간) 새벽 스위스 취리히의 국제축구연맹(FIFA) 본부서 열린 2020 더 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에서 푸스카스상을 수상했다. 히오르히안 데 아라스카에타(플라멩구), 루이스 수아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골로 꼽혔다.

푸스카스상은 헝가리 출신 전설적인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레알 마드리드) 이름에서 딴 상이다. 지난 2009년 처음 제정되어 가장 아름다운 골을 터뜨린 선수를 수상자로 선정한다. 올해는 팬 투표 50%, 전문가 투표 50%를 반영해 수상자가 정해졌다.

손흥민은 한국 선수로는 최초,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째로 푸스카스상 수상자가 됐다. 손흥민 이전엔 지난 2016년 말레이시아의 모하메드 파이즈 수브리가 마법 같은 프리킥으로 골을 성공시켜 푸스카스상을 받았다.

손흥민은 2019-2020시즌 16라운드가 열린 지난해 12월 번리를 상대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역사에 남을 원더골을 터뜨렸다. 당시 전반 32분 토트넘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약 70m를 질주해 완벽한 마무리로 골을 기록했다.

당시 베르통언은 당시 공격수와 경합을 하며 높이 솟구친 공에 발을 살짝 갖다 대며 손흥민에게 패스했다. 손흥민은 페널티박스 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아 약 70m를 질주했다. 베르통언이 도움을 기록하긴 했으나 손흥민이 홀로 만들어낸 골이나 다름 없었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수상 이후 SNS에서 대대적으로 알렸다. 손흥민의 골과 수상에 대해서 토트넘은 우리가 계속 계속 볼 수 있는 최고의 골이라면서 얀 베르통언의 패스가 모든 것을 만들었다라면서 유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푸스카스상은 대회와 성별, 국적에 상관없이 한 해 동안 축구 경기에서 나온 최고의 골에 주어지는 상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09), 네이마르(2011),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2013), 모하메드 살라(2018) 등 수상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푸스카스상은 헝가리 축구의 전설로 매직 마자르를 이끈 페렌츠 푸스카스(1927~2006)의 이름을 따서 2009년 제정한 상이다. 화려했던 헝가리의 전성시대를 이끈 전설적인 선수다. 통산 706골로 역대 축구 선수 중 6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악마의 왼발이라 불릴 정도로 극단적으로 왼발만 쓰는 선수였다.

푸스카스가 헝가리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 헝가리는 세계 최강으로 통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푸스카스의 헝가리는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푸스카스는 4골을 넣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앞두고도 헝가리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예상대로 헝가리는 승승장구했다. 조별리그에서 헝가리는 푸스카스의 2골 활약에 힘입어 홍덕영 골키퍼가 버틴 한국을 90으로 대파했다. 홍덕영 선생은 푸스카스가 찬 공은 마치 대포알 같아서 막으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크로스바에 공이 맞으면 골대가 한참 동안 흔들렸다고 회고했다.

푸스카스는 부상으로 8강과 4강전에 뛰지 못했지만, 헝가리는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서독. 헝가리가 이미 조별리그에서 83으로 손쉽게 제압한 상대라 모두 헝가리의 우승을 점쳤다.

예상대로 헝가리가 두 골을 먼저 넣으며 앞서갔다. 하지만 서독은 기적적으로 세 골을 뽑아내며 32 역전승을 완성했다. 이는 베른의 기적으로 불리며 축구 역사상 최대 이변 중 하나로 남았다.

헝가리 선수들은 서독 선수들의 눈이 풀려 있었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서독 대표팀 선수들이 하프타임 때 각성제의 일종인 암페타민을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엔 금지약물 제도가 없었다.

헝가리는 4년 뒤인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설욕을 다짐했지만,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소련군의 무자비한 진압 속에서 푸스카스는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매직 마자르가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푸스카스는 스페인 대표팀으로 1962년 칠레월드컵에 출전했지만, 스페인은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는 헝가리 대표팀으로 85경기 출전 84, 스페인 대표팀으로는 4경기 출전에 득점은 없었다.

푸스카스는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기도 했다. 또 다른 전설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황금 투톱을 이뤘다. 1958년부터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1960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4골을 퍼부으며 73 승리에 앞장섰다.

1965-66시즌 유러피언컵 2라운드에선 페예노르트를 상대로 4골을 넣기도 했다. 푸스카스는 1966년 유러피언컵 우승 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가 있는 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라 리가에서 5연속 우승을 했고, 유러피언컵 정상에 세 번 올랐다.

지도자로 변신한 푸스카스는 1970년 그리스의 파나시나이코스 지휘봉을 잡고 팀을 유러피언컵 결승에 올려놓았다. 그리스 클럽 역사상 첫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 하지만 요한 크루이프가 활약한 네덜란드의 아약스에 02로 패했다. 푸스카스는 1993년 헝가리 대표팀을 1년간 맡은 이후로 축구계에서 은퇴했다.

푸스카스는 지금도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름이다. 무시무시한 득점력 외에도 드리블과 연계 능력도 탁월했다. ‘헝가리 혁명만 없었다면 축구 역사는 헝가리 중심으로 계속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발로 공을 앞으로 끌었다가 뒤로 빼는 기술인 드래그 백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푸스카스는 1953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전에서 드래그 백으로 상대를 농락한 뒤 골망을 갈랐다. 63으로 헝가리가 축구 종가잉글랜드를 대파한 경기였다.

[스포츠·연예팀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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