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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칼럼] 감언이설이 정말 나쁜 말일까  
서울구정신문(http://seoulgujung.co.kr)   
기사관리자 | 2019.02.11 20:30 |

»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감언이설(甘言利說)이란 말은 흔히 나쁜 뜻으로 쓰인다. 사전적 의미는 남의 비위를 맞추는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이다. 이와 정반대로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말과 이롭게 해주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바꾸어 쓰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똑같은 말이라도 들어서 즐겁도록 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기분이 좋을 것이다. 몇 시간을 함께 앉아서 대화를 나눴는데 웃을 일도 없고 도움 되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면 또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는가.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달콤한 말

나는 항상 누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더라도 감언이설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대변인 시절에는 점심, 저녁을 주로 기자들과 함께 했는데, 두세 시간 동안 내내 웃다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기자들은 정치권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해주면 즐거워하고, 기사 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면 고마워한다.

 

리더의 감언이설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서 조직을 춤추게 한다. 구청장 시절 직원들과 식사를 할 때도 권위주의의 탈을 벗어던지고 늘 즐겁고 도움 되는 말을 해주기 위해 애썼다. 과거의 재미있는 경험담을 비롯하여 TV나 영화, 책 이야기, 초보 직장인의 힌트 등 아무 말이나 주고받으며, 때로는 즉석 고민 상담도 해주곤 했다.

 

몇 해 전 해외여행 중에 가이드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감언이설을 만들어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넣어주었다. “이슬람권의 권세 있는 남자는 부인을 네 명 둔다고 한다. 첫째는 덕 있는 여자, 둘째는 재산관리 잘 하는 여자, 셋째는 음식 솜씨 좋은 여자, 넷째는 예쁜 여자. 나는 당신 하나면 충분해. 네 가지를 다 겸했으니까. ㅋㅋ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고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내는 즉시 호호호~”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홍콩의 구룡반도는 이름과 달리 산봉우리가 8개뿐인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송나라의 황제가 몽골군에 쫓겨서 이곳까지 왔을 때 신하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이곳의 이름을 구룡반도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황제가 반문했다. “봉우리가 8개인데 어찌 구룡이라 하는가?” 그러자 신하가 대답했다. “저 작은 용 여덟 마리를 거느리는 큰 용이신 폐하가 계시지 않습니까?” 비록 빈 말이지만 황제의 기분은 괜찮았을 것이다. 이렇게 구룡반도의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신하를 아부꾼이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으면서 그럴싸한 이야기로 황제의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면 그것도 큰 재주라 할 수 있으리라.

 

어떤 모임에서 건배를 하는데 옆자리 여성이 장난기 어린 시비조로 나에게 말했다. “아니, 건배를 할 때는 상대방 눈을 봐야지 왜 시선이 다른 데로 가 있어요?” 순간 당황한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미인은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 못합니다.” 호호 웃는 얼굴이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일상 속의 감언이설은 하루를 즐겁게 한다. 어느 날 안경을 쓴 예쁘장한 여자애가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기에 다음과 같이 말을 걸어 보았다. “엄마 닮아 예쁘게 생겼네. 너 빨리 커서 안경 벗고 미스코리아 나가거라.” 아이와 엄마 모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윗분으로부터 내가 감언이설을 들은 적도 있다. 정당에 있을 때 큰 행사를 앞두고 당대표에게 연설문은 준비되었는지 물었더니 걱정 말게. 나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맡길 생각이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 그래요? 알겠습니다하고 나가려는데 불러 세웠다. “이 사람, 어디 가? 당신 말고 누가 있어?” 꼼짝 없이 잡혀서 연설문을 쓰면서도 기분은 괜찮았다. 감언이설이란 이처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듣는 사람 입장을 헤아려 말하는 지혜

한 개밥 회사에서 맛 좋고 영양가도 좋고 보기도 좋은 최고의 개밥을 만들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개들이 도통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 여기서 무엇이 문제일까? 개들이 먹는 밥을 만들면서 사람의 입장에서만 만든 것이 문제였다. 소비자인 개들에게 먹여보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개밥을 만들어야 최고의 개밥이 되는 것이다.

 

말도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있으니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려서 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있으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러나 소비자인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무슨 말을 해주면 청중이 좋아할까, 이런 측면에서 말을 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여성들이 500명쯤 모인 행사장에서 축사를 하는데, 무슨 말로 시작할까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남자로 태어나서 행복합니다. 여러분과 같은 아름답고 교양 있는 여성들을 사랑할 수 있고,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저는 또한 남자로 태어나서 참 불행합니다. 수많은 미인들 중에서 단 한 여자와 결혼할 수밖에 없어서 저는 불행합니다.” 모두들 깔깔대며 즐거워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감언이설과는 정반대의 극단적인 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의 이야기다. 손권이 측근을 관우에게 보내 자기 아들과 관우의 딸을 혼인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관우는 화를 벌컥 내면서 어찌 호랑이의 딸을 개의 아들에게 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졸지에 개 취급을 당한 손권은 즉각 최강의 군대를 보내 관우를 죽여 버렸으니 이는 최악의 언어전략이 부른 참화인 것이다. 관우가 손권의 제안이 맘에 내키지 않더라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으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쉽다. “저의 여식은 여러모로 부족하여 훌륭하신 손 장군 댁의 며느리 감이 될 수 없습니다. 과분한 제안을 사양하는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의 감언이설을 했다면 비록 제안은 거부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언이설이 가정의 평화를 불러온다

감언이설은 말하는 기술이다. 같은 뜻의 말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할 수도 있고 나쁘게 할 수도 있다. 어느 고교 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대학 입학원서를 쓰러 온 학생에게 사범대학 진학을 권유하자 학생이 대뜸 화부터 냈다. “저보고 선생 하라는 말입니까?” 이런 말을 듣고 기분 좋을 교사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도 다음과 같이 말하면 감언이설이 된다. “저는 인격이 부족하여 도저히 선생님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데로 써 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새로 사 입은 옷이나 새 헤어스타일에 대해 나 어때요?”라고 물어오면 우선 역시 당신은 패션 감각도 뛰어나구먼이라고 감언이설부터 하는 것이 좋다. 문제점은 나중에 말해도 늦지 않다. 괜히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서로 기분만 상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왜 술 마시고 이제 와요?”라고 말하면 바가지 긁는 것이 되지만 당신은 우리 집의 기둥인데 늦도록 안 들어오니 당신만 보고 사는 내가 얼마니 걱정했는지 알아요?”라고 말하면 감언이설이 된다. 이런 감언이설이 가정의 평화를 불러온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감언이설을 재치 있게 잘 구사하면 돈 들이지 않고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말이라는 것이 정말 오묘한 것이라서 살짝만 비틀어도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듣기 좋은 감언이설도 사실과 동떨어지거나 억지논리, 상대방을 꾀기 위한 목적이 들어간다면 나쁜 의미의 감언이설이 되고 만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티가 날 정도로 추켜세우면 아부 떠는 것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전 관악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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