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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  
서울구정신문(http://seoulgujung.co.kr)   
기사관리자 | 2019.01.18 13:10 |

-구한말의 과거사 진상! 매천 황현의 양심의 붓

본지는 구한말 혼탁했던 1864(고종 원년)부터 1910년에 이르는 47년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양심의 붓을 휘두르고 나라에 경종을 울린, 그러다 1910년 나라가 일본에 합병되자, 더 이상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동년 910일 유서를 남기고 망국의 원한을 품은 체 원혼이 되고 만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을 시리즈로 연재하고자 한다.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기대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동호님의 편역이다.

을미년(고종32) 19

고종은 과거에 상궁으로 있던 엄씨를 불러 대궐로 맞아들였다. 민비가 살아있을 때 고종은 그녀가 두려워 감히 엄씨를 곁눈질하지도 못했다. 10년 전 엄씨를 총애했는데 민비가 이를 알고는 크게 노해서 그녀를 죽이려고 하자 고종의 만류로 죽음을 면했지만 출궁 당했다. 고종의 부름을 받고 입궐했는데 민비가 죽은 지 5일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장안 사람들은 왕에게 깊은 마음이 없다며 모두 한스럽게 생각했다. 엄씨의 생김새는 민비와 비슷했으며 권모와 재략 또한 민비와 흡사했다.입궁한 엄씨는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더구나 정사에 간여하여 뇌물을 받았으니 침침(일의 진행이 빠른 모양)함이 민비 때와 동일했다.

을미년(고종32) 20

9월에 세전과 호전에 바치는 시기를 정했다. 각각 2차로 나누어 세전은 해마다 10월과 다음해 정월에, 호전은 매년 3월과 9월에 바치도록 하였다.

을미년(고종32) 21

각 부에서는 세무시찰관을 두었는데 세무시찰관은 중앙에서 파견하고 세무주사는 지방 사람을 뽑았다. 그러나 간교한 무리들이 군수와 짜고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에 가끔 타도 사람을 추천하였다. 그렇지만 중앙에 인사를 속여서 보고했는데 어느 도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서울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을미년(고종32) 22

10월에 일본정부는 공사 삼포오루를 소환하여 일본인 재판결정서에 따라 삼포공사 등을 범죄자로 몰았지만 별 다른 증거가 없다며 모두 방면했다. 또한 각 보고문에 대원군이 대궐에 들어가 난을 주동했다고 크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에 삼포공사는 왕명을 받고 구출하기 위해 들어갔으며, 민비시해사건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은 모두 자기의 주변을 엄호하려는 계략에서 그랬던 것이다.

을미년(고종32) 23

10일 민비는 위호(작위와 명호)를 복위하고 법부에 명해서 흉범들을 체포토록 하였는데 군부대신 조희연과 경무사 권영진을 죄가 있다고 하여 면직시켰다.

8월 이후 주한외국공사들은 역도들을 조사하여 정형(죄인을 사형에 처하는 형벌)에 처하라고 주장하자 김홍집 등은 왕후가 도망했다는 것을 빙자하여 날짜를 자꾸 끌었다. 하지만 그의 정절(궂은일을 당한 가엾은 정상)이 차츰차츰 드러나면서 숨길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김홍집은 모든 외국사신들과 함께 임금 앞에서 결재를 얻어 민비의 복위와 역당들을 잡아서 멸하라는 칙지를 반포하고 조희연 등을 면직시켰다. 이때 이두황과 우범선 등은 모두 도망을 했다.

을미년(고종32) 24

칙명에 지난 번 변란 때 왕후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서 오래 지내왔지만 당일 붕서(왕이나 왕후의 죽음)하였다는 증거가 뚜렷하다. 따라서 820일 묘시를 기해서 왕후가 곤령각에서 승하했다는 것을 중외에 발포하여 알린다고 되어 있다.

을미년(고종32) 25

김해사람 문석봉이 충청도 보은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의병을 일으켜 적당들을 토벌하자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곳과 인접한 읍의 유생들이 두건과 도포를 입고 나아갔지만 얼마 후 공주부에 모두 체포되었다.

을미년(고종32) 26

8월 민비 시해사건을 조사했는데 관련자인 이주희·윤석우·박선을 체포해 처형시켰다. 8월 변란에 이주희는 군무협판이었고 윤석우는 훈련대참위였는데 공모한 흔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박선은 부산사람으로 약관에 일본말을 잘하여 일본인에게 고용되었을 뿐이다. 김홍집은 역당을 다스리는 것에 엄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말썽이 생길 것을 두려워하여 높은 직위에 있는 관료들은 감히 가려내지 못했다. 따라서 위의 세 사람만을 이옥시켜 사리가 불확실한 채 책망을 면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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